野球少年とラベンダー少女の恋物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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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월상님 커미션

 

※ 맨 아래에 上, 下편이 있습니다.

※ 이번 글은 이미지 없이 텍스트만 있습니다.

※ 中편은 성인편으로 온전한 본문은 포스타입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티스토리는 개정판(17금?)입니다.

 

 

 

  카즈야 생각에 인간은 너무 나약하며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다. 그간 겪어온 바에 따르면 그 생각은 점점 더 견고해진다. 인간이란 단순히 의, 식, 주 이 셋을 충족시킨다고 해서 오래 사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고 또 그중 하나가 없다고 해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이가 없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약한 것만으로도 골치 아픈-물론 그는 이런 일을 대단히 반긴다. 오래 사는 이들에게는 이런 작고 쏠쏠한 즐거움이 필요한 법이다.-일인데 변덕스럽기까지 한 존재라는 것이 카즈야가 긴 생애에 걸쳐 낸 결론이다.

  시안으로 따지자면 이런 인간 중에서도 가장 종잡을 수 없는 존재다. 카즈야는 많은 인간을 지나쳤고 또 그들을 오래 부렸지만, 시안처럼 기세가 등등한 인간은 처음 만났다. 복수라는 것에 자신을 전부 태울 것처럼 구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은 이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데 시안에 한해서는 그게 됐다. 이 여자는 객관적으로 바라볼 것 없이 그냥 재미있는 여자다.

  그는 시안이 복수를 말하는 옆얼굴을 좋아했다. 거기에는 카즈야가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불꽃이 있다. 사실 어떻게 잃었는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는 불꽃이 시안의 눈 안에서 한들한들 흔들리는 것을 보자면 카즈야는 무척 기분이 좋아졌다. 시안의 건방진 말투, 인간일 적을 잊지 못하는 어리석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듯한 혹은 시안이 누렸던 모든 것을 안타까워하는 듯한 연민…카즈야는 오래 사는 이 특유의 오만함으로 시안을 재단하고 또 평가했다. 그리고 막연하게 오랜 시간을 짐작했다. 영원히 저렇게 타오르기를 바라면서.

 

  “요즘은 기운이 없네.”

  “그래?”

  “예전의 그 열정은 다 어디에 간 거야, 아가씨?”

 

  그런데, 끝은 생각보다 빠르다. 넋 놓고 창밖을 보는 일이 많아진 인간을 바라보며 카즈야는 다시 한번 인간의 나약함과 취약성을 되새겼다. 복수라는 것이 그렇게 강한 감정인가? 그가 모르는 감정은 그가 모르는 곳에서 빠르게 불살라진 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듯했다.

  시안은 최근-카즈야는 시간을 헤아린 것이 참 오랜만이다.-창밖을 자주 본다. 그들의 창에 비치는 것은 고정된 풍경, 그가 만들어낸 일종의 심상에 불과한데, 그래서 그것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을 시안이 모르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했다. 한번은 시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왜 창밖을 그렇게 보는 거야? 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창틀에 입김을 한 번 불고, 그 입김이 아직 창을 덥히는 것을 보며 안심한 것처럼 눈썹을 내렸을 뿐이다. 모든 것에 둔감해진 여자를 어떤 식으로 불러야 할지 카즈야는 모른다.

 

  “아가씨.”

 

  이전에는 그 호칭을 싫어하며 꺼리던 여자였다. 그 생기 있는 얼굴, 거절하는 손짓, 그런 것이 기꺼웠기 때문에 카즈야는 종종 여자를 시안이라고 부르는 대신 아가씨라고 불렀다. 그러면 시안은 아가씨가 아니라 시안. 서늘한 목소리로 말하며 시안이 시안임을 주장해 주었다. 무척이나 생기있고 기꺼운 행위였으므로 카즈야가 시안의 이름을 부르는 일은 많지 않았다. 시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가씨.

 

  이제 시안은 그 말에도 그냥 고개를 작게 기울일 뿐이다. 죽은 듯한, 재미없는 행위의 일종이 되고 만 여자를 보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쪽은 카즈야갸 됐다. 한 번 더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여자를 향해 카즈야는 결국 다른 이름을 내어놓아야 했다.

 

  “시안.”

 

  창문을 못 박힌 듯 바라보던 눈이 카즈야를 향했다. 복수를 말할 때의 절실함, 선연하던 감정, 끓어오르는 듯한, 그런데도 정제된 듯한 목소리…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는 고요함이 거기에 있었다. 변하지 않는 풍경이 재미없기 때문에 시안을 들였는데, 이제 시안조차 그 풍경의 일부인 듯하다. 당연히 카즈야의 마음에 썩 차지 않았다.

  시안의 입술이 조밀하게 움직였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는데, 기운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말할 마음이 들지 않아서인가, 카즈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시안.”

  “왜?”

 

  한 번 더 불러야 겨우 대답이 돌아왔다. 짜증-감정의 기복이 커졌음을 카즈야는 눈치채지 못했다.-스러웠다.

 

  “아직도 졸려?”

 

  평소보다 조금 쏘아내듯 던진 물음에도 시안은 고개를 느리게 젓는다.

 

  “이제 그런 감각이 없어진 지 꽤 되었다는 걸, 카즈야도 알잖아.”

 

  분명히 알고 있는 일이었다. 시안이 갑작스럽게 잠들기 전까지는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인간은 그에게 종속되면 서서히 많은 것을 잃는다. 생기, 온기, 욕구, 감각…. 그것이 인간 특성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렇게 된다는 것을 카즈야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만한 세월을 살았다.

  그런데 시안은…. 카즈야는 시안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 여전히 서늘함과는 거리가 먼 체온이었고, 여전히 굳지 않고 부드러운 피부였다. 손톱으로 시안의 뺨을 살며시 긁자 시안이 흠칫 떨었다.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자극에 무뎌지지도 않으며 졸음도 여전한 여자…그런데 느낄 수 있는 감각과는 별개로 이 여자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려는 듯 굴었다. 모든 것에 무뎌지지도 못한 몸으로 모든 것에 무딘 것처럼 창밖이나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처럼 생기 있는 것이었으면 한다.

  그 단순한 마음으로-그런데 정말로 단순했을까? 누군가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이렇듯 오래도록 생각하고 또 낭만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정말로 그런 흥미로 여겨질 수 있는가? 그런 질문을 누군가 카즈야에게 던져 주었더라면, 카즈야는 아마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었다.-카즈야는 시안의 입술에 고개를 기울였다.

 

  “잠드는 공주님을 깨우는 방법을 알아?”

  “갑자기 무슨 말이야?”

  “네가 또 잠들 것 같아서, 시안.”

 

  입술과 입술이 맞닿았다. 더운 숨이 카즈야의 입안으로 파고들었고, 그는 그사이를 놓치지 않고 혀를 들이밀었다. 서늘한 혀가 시안의 작고 말랑한 혀와 맞닿았다.

 

  “흐으….”

 

  저릿한 감각이 드는 모양인지, 시안이 손바닥을 가볍게 쥐었다. 카즈야는 시안의 혀끝을 송곳니로 가볍게 물어뜯었다. 지배당하는 것을 허락한 시안에게 이것은 제법 큰 쾌락으로 다가올 것임을 모르지 않고 한 행위였다.

 

  “기분 좋지 않아, 시안?”

  “읏…흐으….”

 

  신음을 참는 목소리가 억눌린 것이 좋았다. 카즈야는 시안의 턱을 쥐었다. 시안은 저항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이 약속한 바이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할 것이었다.

  시안의 손이 카즈야의 손등을 쓸었다. 붉어진 뺨이 마치 인간처럼 카즈야를 향한다. 그리고 그 눈이…. 카즈야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물론 그는 숨을 쉬지 않는 존재이므로 이것은 비유에 가깝다.-삼켰다. 시안의 눈이 붉게 반짝였다. 무엇인가 태우는 것처럼, 탐욕스럽게 무엇을 갈구하는 것처럼, 카즈야가 오래도록 기다려온 것 같은 그 눈이었다.

 

  “휩쓸리지는 않는 인간이었지, 너.”

  “무슨 말이야?”

 

  입술 사이로 시안의 타액이 늘어졌다. 카즈야는 시안의 입술을 닦아 주었다. 시안으로 말하자면, 그것을 마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행위가 이 여자에게는 익숙한가? 카즈야는 질문을 던지지만, 대답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여자가 아는 사람은 그것이 친구이건 가족이건 혹은 원수이건 간에 다 죽어버리지 않았나, 그래서 이 여자는 어디에도 갈 수 없이 여기에 붙들리지 않았나, 그런 이유로 카즈야는 오래도록 이 여자를 독점할 권리를 얻지 않았나….

 

  “무슨 뜻이냐고 물었어, 카즈야.”

 

  오랜만에 보는 눈이 반가웠다. 카즈야는 적잖은 아량을 베풀어 대답해주었다.

 

  “꽤 즐기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즐기고 있어, 실제로.”

 

  무뚝뚝하기까지 한 대답과 대치되는 눈으로 시안이 카즈야를 본다.

시선이 맞닿은 것이 신호나 다름없었다. 시안의 팔이 카즈야의 목을 감았고, 카즈야의 손이 시안의 허리를 쥐었다. 카즈야는 시안의 혀를 뿌리까지 삼킬 듯 탐욕스럽게 쥐었다. 인간과 입을 맞춘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입술이 젖어 드는 감촉이 낯설게 좋았다. 그는 그 이유를 그가 오래도록 겪어내지 못한 낯섦에서 찾았다.

 

  “더 하자.”

  “…좋아.”

 

  시안은 망설이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거부하지도 않았고 도리어 반기는 기색이었다. 무엇이라도 장작을 넣어주면 이 여자의 눈은 타오르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순간 스쳤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카즈야는 더 바라본 적이 없었고 바랄 생각도 아직은 없었다.

  여자의 손가락이-카즈야는 그 애, 라고 할 뻔했다. 순간적으로.-카즈야의 목덜미 뒤쪽을 쓸었다. 싫었다면 하지 않았을 일이 분명하므로 그는 다소 급하게 허리를 쓸어내렸고, 그 안쪽에서 바르작거리는 시안의 허벅지를 쥐었다.

 


 

  “아가씨.”

 

  그는 시안의 이름을 불렀다.

 

  “흐, 으읏, 아, 시안…이라고.”

 

  부정하는 말을 듣고 싶어서 다른 호칭으로 한 번 부르고, “그래, 시안….” 또 한 번, 제대로 된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 이름이 오래도록 이곳에 남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모두 시안이 세 해 잠든 데에서 시작된 이야기다-사실 그보다 더 이르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카즈야는 모른다. 인간은 세 해를 잠들지 않는다. 그런데 시안은 세 해나 오래도록 잠들었다. 깨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하면서도 카즈야는 시안의 잠든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렇게 깨어난 시안이다. 그렇게 비어버린 시안이다.

  텅 빈 눈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다시금 반짝이는지 카즈야는 모르고, 알 도리도 오래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그가 가장 잘 아는 감각이며 또 가장 쉽고 직관적인 감각으로 시안을 세상에 붙들었다. 이것이 무슨 마음인지 알지도 못하는 채 어리석게도 그렇게 했다. 어린 인간이 신에게 동정을 구하는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카즈야는 아직 모른다. 결국, 그러니까,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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